예배학 강좌:

기독교 예배의 어제오늘 그리고 내일



6. 성찬 (성찬 성례전) (1)



성찬은 바울서신과 복음서들이 쓰여지고 회람되던 때 이미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기본적 예배 구조로서 그들의 하나님, 그리스도, 성령, 교회, 영성에 대한 경험과 이해를 표현하고 빚어내던 의식이었다. 이러한 성찬경험과 이해 그리고 의식문들은 후에 바울의 편지들과 복음서에 직ㆍ간접적으로 반영되어 있다. 바울서신과 복음서에 등장하는 식탁 이야기가 담고 있는 메시지를 살펴볼 때에 초기 교회의 성찬이해를 간접적으로 포착해볼 수 있다.

 


1. 바울서신


(1) 신앙의 여정에 주시는 신령한 음식


 

몸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전 10:1-4)

 

이스라엘은 홍해의 물과 광야의 작열하는 불을 유월하여(passover) 가나안으로 나아갔다. 저들에겐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신령한 음식 만나가 있었다. 바울에 따르면 그리스도인들은 세례의 물과 성령의 불을 지나 약속의 땅으로 나아간다. 저들에겐 하늘에서 내려오는 신령한 음식이신 그리스도 즉 성찬의 음식이 있다.

 


(2) 성찬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와의 연합 혹은 교제(koinonia)이다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cup of blessing)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koinonia)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koinonia)이 아니냐”(고전 10:16)

 

그리스도의 몸과 피와의 연합의 신비가 구현되는 곳이 바로 성찬이다. 따라서 성찬은 참여자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분의 가시적 몸으로서의 교회로 변모되는 사건이 일어나는 곳이다. 즉 성찬은 교회가 계시되는 사건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는 이제 세상에 대해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 행하실 성찬예배 행위에 참여해야 한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과 한 몸된 교회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자신의 몸을 들어 감사의 기도를 드린 후 쪼개어 세상에 주며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너희를 위한 나의 몸이라”(고전 11:24). 또한 잔을 들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라”(고전 11;25)

 


(3) 성찬은 회해와 일치의 식탁이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3:26-28)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세례받은 자는 한 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다. 주님의 상()은 민족, 사회적 신분, (), 경제적 신분(가난한 자와 부자)의 벽을 넘어 모두에게 열려져 있다. 주님의 만찬은 인간의 모든 경계가 무너지고 그곳에서 한 몸 그리스도께서 일어서시고 그분의 몸으로서의 교회가 표현되고 창조되어야 할 자리이다.


부자와 가난한 자들 간의 일치기 전제되지 않은 고린도 교회의 식탁은 분열의 식탁이지 사랑과 화해의 식탁이 아니다. 저들이 먹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증오와 다툼이다. 생명의 식탁이 저주의 식탁이 된 것이다. 이러한 분파적 식사는 주님의 만찬이 될 수 없으며(고전 11:20) 그러한 식사는 각자 집에 가서 하는 게 나을 것이다(고전 11:22). 이러한 파당과 분쟁 그리고 분열의 식탁은 교회라는 한 몸을 이루는 신비적 과정 즉 교회 계시사건에 해()가 된다(고전 11:17).


바울이 주님으로부터 전해받은 전통에 따르면 주님은 하나님과 피조세계 간 화해와 평화, 사귐과 교제를 위해 당신의 몸을 내어주셨고 이 화해의 새 언약의 표로서 당신의 피를 뿌리셨다. 성찬은 회해를 위한 그분의 죽음의 의미가 선포되고 그 화해의 실체인 당신의 몸된 교회의 현현이 경험되어야 할 곳이다. 성찬이 오히려 분열과 불화가 선포되고 내면화되며 구조화 되는 곳이 된다면 이때 우리는 그분의 몸과 피를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것이 될 것이며 그분을 헛되고 욕되이 만들게 될 것이다. 이 때 우리가 먹고 마시게 될 것은 생명의 힘인 사랑과 화해가 아니라 죽음의 실체인 증오와 저주가 될 것이다.

 


2. 마가복음


(1) 모든 자들에게 열려 있는 성찬


마가는 무리를 먹이시는 예수의 이야기를 통해 즉 성찬의 이미지를 통해 교회의 선교적 사명을 지적하고 있다.


첫 이야기(6:34-44)는 갈릴리 호수의 유대 땅인 갈릴리 지역에서 일어났다. 여기서 떡은 유대 땅의 유대 남자들을 위해 들려져 성별되고 쪼개어져 나누어진다: “떡을 먹은 남자가 오천 명이었더라”(6:44).


두 번째 이야기는 사천 명을 먹인 이야기(8:1-10)로서 갈릴리 호수의 건너편 이방 땅 게네사렛에서 일어났다. 여기서 떡은 유대인을 넘어 이방인과 여자에게도 주어진다: “사람은 약 사천 명이었더라”(8:9).


이 두 이야기 사이에 유대 땅과 이방 땅을 갈라놓고 있는 갈릴리 호수를 건너는(유월) 이야기가 삽입되어 있다. 12사도로 상징되는 교회는 지금 이방 땅 벳세다로 건너가라는 주님의 명령을 따라 갈릴리 바다 한 가운데 있다. 그 길 위에서 교회는 저항과 불안으로 동요하고 있다: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6:48). 그러나 주님께서 바다 위를 걸어 저들에게 오시며 말씀하신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6:50). 이방인을 향해 자신을 부수고 나아가는 일은 저들에게 두렵고 놀라운 일이다. 저들은 아직 떡상이 모두를 위해 준비되어야 함을 알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6:52).


주님의 상은 모든 사람들을 위해 개방되어야 하며 거기엔 유대 땅과 이방 땅, 유대인과 이방인, 남자와 여자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 갈릴리 호수는 유월되어야 하며 유대인 남자를 위한 떡 뗌은 상에서 떨어진 떡 부스러기라도 주워 먹고자 하는 수로보니게 여인(7:26-28)과 이방인에게 열려야 한다. 마가는 오천 명을 먹인 이야기... 갈릴리 호수의 이야기... 사천명을 먹인 이야기의 배열을 통해 성찬이 전 인류를 위해 배설되고 나누어져야 한다는 복음의 선교적 비전을 당대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선포하고 있다.

 


(2) 제자도 -


마가가 떡으로써 교회의 범위와 선교의 범위를 가리켰다면, 잔을 통해서는 이 비전을 이루기 위해 요청되는 제자도와 헌신의 깊이를 지적하고 있다. 성찬의 잔에 관한 함의는 세 개의 본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제자들이 그리스도를 따라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정 중에 나온다. 예수께서는 세 번이나 예루살렘에서의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신다. 그러나 제자들은 세 경우 모두 그분의 선언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세 번째 죽음과 부활의 예고 후 주의 영광을 구하는 야고보와 베드로에게 예수는 질문하신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10:38)

여기서 잔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뜻하며 그분의 잔을 마신다는 것은 그분의 죽음과 부활에의 참여를 뜻한다.

 

두 번째 이야기는 마지막 만찬 기사에서(14:22-25) 찾아볼 수 있다. 마가는 이 잔이 많은 사람을 위하여”(14:24) 흘리는 주님의 언약의 피임을 선언한다. 마지막 만찬에서 제자들은 예수께서 마시는 잔을 함께 마셨다”(10:38-39). 많은 사람을 위한 그분의 삶의 수혜자가 되는 동시에 세상을 위한 그분의 삶을 따라 세상을 섬기는 제자가 됨을 뜻한다.

 

세 번째 이야기는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 이야기(14:36) 속에 나온다. 마가는 당시 박해 상황 속에서 교회가 취해야 할 제자로서의 삶을 예수의 모습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잔을 마신다는 것은 예수에게는 십자가를, 그리고 이 글을 읽던 독자들에겐 그리스도의 수난의 십자가를 함께 지는 제자도에의 참여를 뜻한다.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14:36)

 


 

3. 마태복음


(1) 죄의 용서로서의 성찬


마태는 성찬을 통해 일어나는 사건을 죄의 용서로서 이해한다. 마지막 만찬에서 예수의 죽음과 피흘림은 죄의 용서를 위해 많은 사람을 대신하기 위한 일로 이해한다. 마태복음의 주요 관심은 죄의 용서이다. 이 주제는 그가 소개하는 주기도문에 잘 나타나 있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6:9-15)

 

마태의 주님의 기도문이 전통적으로 성찬감사기도문 뒤에 이어 불리워지는 데는 이러한 성찬에서 주어지는 죄의 용서의 경험이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2) 다른 사람을 위한 고난의 잔을 마심 -


마가처럼 마태도 잔의 주제를 세 번에 걸쳐 발전시킨다. 그러나 마가처럼 이 잔을 주님이 받을 세례에 비유하지는 않는다. 단지 그분의 잔에 주목한다. 예수는 이 잔을 저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에서 그리고 수난에서 마신다.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26:27-28)

 

제자들은 모두 이 잔으로부터 마셔야 했다. 왜냐하면 이는 죄의 용서를 위해 많은 사람을 대신한(on behalf of) 언약의 피이기 때문이다. 이 잔에 대한 예수의 말씀 속에서 마태는 여러 점에서 이사야 52:13-53:12의 고난받는 종의 노래의 이지지를 따온다. 그럼으로써 마지막 만찬의 희생적 차원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on our behalf) 우리는 생각하기를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하였노라”(53:4)

 


(3) 주님의 언약의 피가 뿌려짐


잔은 예수의 언약의 피이다. 이러한 표현은 모세의 언약과 양의 피로 이 언약을 봉인하는 행위(sealing)를 연상시킨다.

모세가 와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의 모든 율례를 백성에게 전하매 그들이 한 소리로 응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산 아래에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 열두 지파대로 열두 기둥을 세우고 이스라엘 자손의 청년들을 보내어 여호와께 소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게 하고 모세가 피를 가지고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제단에 뿌리고 언약서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낭독하여 듣게 하니 그들이 이르되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모세가 그 피를 가지고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24:3-8)

 


(4) 주님의 고난과 죽음에 대한 참여로서의 잔을 마심


겟세마네 동산 이야기에 등장하는 잔은 고난과 죽음에의 참여와 관계되어 있다(26:36-46)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이르시되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your will be done)' 하시고... 나아가 세 번째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26:36-46)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소서“(혹은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는 표현은 주기도문의 내용과 동일하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성찬의 잔 앞에서 우리가 드려야 할 기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