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학 강좌

기독교 예배의 어제오늘 그리고 내일

 

15. 여러 교파의 예배 특색(2)



(2) 개혁교회의 예배


개혁교회의 기원은 152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루터와 함께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개신교 지도자들이 그해 마르부르그(Marburg)에 모여 중요한 사항에 대해 의견을 정리해 나가던 중 예배에 대해서는 만장일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때에 루터로부터 분리해 나온 쯔빙글리, 마틴 부처, 멜랑히톤 등이 바로 개혁교회의 선구자들이다.

 

이들의 특징은 말씀에 대한 강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신조와 윤리를 강조하고, 일체의 물질적인 요소들을 배격하는 데 있다. 쯔빙글리는, 영적인 것을 전달하는 데 물질적인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으며, 이러한 이분법적인 사고는 교회로부터 일체의 상징적 물건들을 제거하는 행동으로 이어졌다. 심지어 그는 음악까지도 예배로부터 완전히 제거하였으며, 1527년에는 쮜리히의 예배당에 있는 파이프 오르간도 철거하였다.

 

개혁주의자들이 예배에 끼친 공헌은 성경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의 예배에서는 설교가 길게 행해졌고 특히 주석적인 설교가 발달하였다. 그러다 보니 예배가 지성에 호소하는 경향이 있었으며, 자연히 교육받은 사람들에게 호응을 받는 예배가 되었다. 말씀에의 순종이 강조되었고, 예배와 삶의 관계성이 중시되었다. 깔뱅의 예배에서 예배의 시작 부분에 아무런 선()을 행할 수 없고 우리는 우리의 부패 가운데 거룩한 계명들을 끝없이 또는 그침 없이 범하고 있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죄의 고백을 한 것은 전형적인 개혁교회 예배의 특징이 되었다.

 

예배에서 설교가 강조되다보니 부작용도 뒤따랐다. 예배의 분위기가, 긴 기도, 긴 설교, 의례적인 말, 권면, 교훈 등으로 인해 전반적으로 지루하게 되었으며, 예배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기 위해서보다는 회중을 가르치기 위한 기능을 더 많이 하게 되었다.

1년에 네 차례 시행하는 성찬식을 각 사람이 가치 있게, 그리고 합당한 경건함으로 받기 위한 준비를 갖추고 마음의 자세를 가질 수 있도록일주일 전에 공포하는 관습 역시 깔뱅에게서 유래하였다.


설교 중심의 예배형태는 예배당의 구조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을 강단에 근접시키기 위한 필요성 때문에 높은 강단과 발코니가 개혁교회 예배당의 특징이 되었다. 최선의 예배당 공간배치를 찾으려는 노력은 팔각형, 사각형, 그리스 십자가 형 등 다양한 예배당의 형태가 시도되었다.

 


(3) 성공회(영국국교회)의 예배


성공회는 16세기에 영국에서 영국 교회의 수장은 영국의 국왕이라는 선언과 함께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독립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성공회는 비로 개신교이기는 하지만 예배에 있어서는 대부분의 개신교 전통들의 예배보다 더 보수적이다. 많은 예배의식, 예복의 착용, 조각상이나 성상들, 마리아 신앙, 사적인 죄의 고백 등은 평범한 그리스도교인들에게 구교와 혼동하게 할 정도이다.

 

성공회 예배의 특징은 예배 의식서에 있다. 성공회는 개신교 최초로 공동기도서’(Book of Common Prayer, 1549) 라는 예배 의식서를 대주교 토마스 크랜머(Thomas Cranmer)의 주관 하에 만들었으며, 예배는 철저하게 이들 예식서에 근거하여 이루어진다. 이는 예배참여의 개념에 중대한 변화를 초래하였는데, 그것은 중세 후기의 보는 예배개념에서 듣는 예배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중세 후기의 예배에서 회중은 라틴어로, 그것도 작은 소리로 말하는 사제의 말소리를 알아들을 수 없었으며, 그저 화려한 의식과 동작을 바라보는 것이 전부였던 반면에, 성공회의 예배에서 회중은 사제가 하는 말을 분명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14세기부터 도입된 예배당의 회중석의 장의자는 회중으로 하여금 앉아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하는 대신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하게 했는데, 이는 종교개혁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성직자는 회중을 향하여 서서 회중이 가장 잘 들을 수 있도록 말하는 데 큰 주의가 기울여졌다.

 

성공회의 예배는 교회력을 엄격히 준수하고, 인도자와 회중이 주고받는 기도형태의 연도’(Litany)를 사용하며, 매주일의 성찬식 준수 등에 있어서 중세기보다는 초대교회의 유산을 회복하려는 전통에 서 있는 한편, 융통성이나 다양성의 도입, 평신도의 보다 능동적인 역할 등을 도입함으로써 보다 현대화 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4) 청교도 및 분리주의자들의 예배


청교도와 분리주의자들 역시 영국에서 기원하였으며, 오늘날 독립교회라고 불리는 여러 교파들 즉 침례교파 중 일부, 조합주의자들(회중교회), 유니테리언 보편구원론자들, 캐나다 연합교회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 교회들이 지역적으로는 영국에서 출발하였으나, 신학적 뿌리는 개혁교회이며, 일종의 과도한 깔뱅주의라고 볼 수 있다.

 

청교도와 분리주의자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엄격한 성경엄수주의이다. 청교도들은 예배의 모든 사항에서 절대적인 권위를 원했고, 이 권위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서만 찾아질 수 있는 것이었다. 그들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성경에 규정되지 않은 어떤 방법에 따라서는 예배 받으실 수 없으시다고 말했다.

문제는 성경에 예배에 관한 언급이 부분적이라는 데 있다. 왜냐하면 성경은 예배에 관한 규정을 목적으로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청교도들 자신도 성경이 규정하는 바에 대해 일치된 의견을 가질 수 없었다.

 

청교도와 분리주의자의 두 번째 특징은, 예배에 관한 결정이 개별 회중에 의해 정해진다는 것이었다. 이는 개혁교회에서 예배에 관한 지침이 국가 교회 차원에서 행해지던 것과는 대비된다. 개별 회중과 지역교회는 예배의 자치권을 가졌고, 따라서 예배의 형식은 공동체마다 독립적으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결국 예배순서는 거의 비슷하게 이루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성문기도문이 아닌 즉석기도는 분리주의자들의 특징적인 형태였다. 청교도들은 공동기도서에 기록되어 있는 기도문들이 너무 짧고 그들이 처한 현실이나 상황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록된 기도문을 사용하는 것에 심한 거부감을 가졌다. 특히 인도자와 회중이 교대로 말하는 형식의 연도, 왔다 갔다 하는 테니스공에 비유하면서 즉석에서 마음속에 떠오르는 영감으로 기도하기를 원하였다.


청교도의 진정한 힘은 성경적이면서도 현실과 관련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기대되었던 설교에서 나왔다. 공을 들여 본문을 분석하고 생생한 표현으로 삶에 적용하는 청교도의 설교는 기록된 설교문을 읽기만 하는 영국 국교회 설교자들의 그것보다 훨씬 더 호소하는 힘이 있었다. 청교도들의 설교는 보통 한 시간 또는 그 이상 지속되었으며, 예배 시간의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또한 설교자는 지정된 성서일과를 따르지 않고 그때 그때 임의로 성경본문을 정하여 설교하거나, 독자적으로 설교계획을 짤 수 있었다.


현대에 끼친 청교도의 영향은 지성에 호소하는 설교, 길고 교훈적인 기도, 감정에 호소하는 예배 분위기, 부흥회식 예배 등을 꼽을 수 있다.

 


(5) 감리교회, 성결교회, 구세군의 예배


감리교회는 요한 웨슬레와 그의 동생 챨스 웨슬레의 제자들과 후예들을 말한다. 이 예배전통은 오늘날 영국과 미국의 감리교회 또는 웨슬레파라고 칭해지는 교회들에게서 가장 뚜렷이 나타나며, 구세군, 나사렛 교회, 성결교회 등도 넓은 범주에서 웨슬레의 신앙유산을 계승하고 있다.


감리교회의 뿌리는 매우 다양하다. 빈번한 성찬의 횟수와 신학, 철야기도, 금식 등에 있어서는 중세교회의 경건을 계승했으며, 지도자들이 대부분 성공회 목사였던 점에서 성공회의 유산도 물려받았고, 청교도와 모라비안 등으로부터도 물려받은 유산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감리교회 예배의 특징은 열정적인 찬송과 개인적인 간증, 그리고 공동의 예배에서 기록된 기도문즉석 기도를 공히 사용한 것을 들 수 있다. 빈번한 성찬식과 성경공부의 장려, 속회(구역회) 모임, 애찬식 등도 감리교 예배의 특징이다.


성찬 신학에 있어서는 희생제사로서의 성찬과 성령의 역사를 강조함, 그리고 종말론적 식사로서의 성찬 개념이 강조되었다. 성찬에서 포도주 대신에 포도즙을 사용한 것도 감리교도인 토마스 웰치(Thomas B. Welch) 박사의 공헌이었다.

 

감리교회의 열정적인 찬송과 철야기도, 그리고 간증 장려 등은 20세기 초 북미에서 일어났던 대각성운동의 기원이 되었으며, 그 외에도 성경보급, 주일학교, 전도, 노예제도 폐지, 여성의 권리운동, 금주운동 등 사회운동에도 기여한 바가 컸다.

 


(6) 서부 개척자 시대의 예배전통


19세기 미국에서 중요한 예배형태가 탄생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개척자 전통이라고 이름 붙여진 일종의 예배형태이다. 이는 19세기 당시 미국 서부의 광활한 대지 위에 흩어져 살게 됨으로써 교회에 다니지 않거나 다닐 수 없게 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하나의 새롭고도 독특한 예배형식이었다.

 

1801년 켄터키 주 부르봉 카운티의 케인 능선(Cane Ridge)에서 장로교 목사인 바톤 스톤(Barton W. Stone)과 함께 대형 야영집회가 열렸는데, 외떨어진 장소였음에도 불구하고 약 1만명 내지 25천여 명이 모이는 대성황을 이루었다. 이 야영집회는 선교예배라는 두 가지 목적으로 개최되었으며, 그 목적을 성공적으로 성취함과 동시에 천막집회’(Camp Meeting)의 유행을 초래하는 계기가 되었다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온 신앙부흥회는 여러 날 계속되던 천막집회로부터 유래하였다. 당시의 천막집회는 그 어떤 고정된 예배형식도 고집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실용성이 있는가?’만이 예배형식의 유일한 척도였다.

 

신앙부흥회의 통상적인 주일예배는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첫째 부분은 준비단계로서 찬송을 열정적으로 부르는 시간이고, 둘째 부분은 강력한 복음전도 설교이며, 셋째 부분은 회심자들을 앞으로 불러내는 초청의 시간이었다.


이러한 3부 구조의 집회의 형태는 통상적인 주일 예배의 형식에도 대폭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1905년에 출판된 감리교 찬송가에 나타나는 주일예배의 형식은 다음과 같다: 오르간 주악, 찬송, 사도신경, 기도, 주기도문, 성가, 구약성경 봉독, 송영, 신약성경 봉독, 광고, 헌금, 찬송, 설교, 초청. 이 예배순서 역시 자세히 보면 준비단계,’ 복음 선포인 설교,‘ 그리고 결실을 유도하는 초청으로 구성되어 있다. 설교가 제일 뒤에 나오는 이유 또한 자명한데, 그것을 설교를 한 직후에 바로 초청을 해야 결신자를 더 많이 얻을 수 있다는 실용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개척자 전통의 예배는 성가대의 기능과 역할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금박을 입힌 오르간의 파이프들이 강단 전면 가장 눈에 띄는 부분에 도입되었고, 높게 돋우어진 성가대의 좌석에는 가운을 차려입은 성가대원들이 회중석을 바라보며 앉는, 음악회 무대와 같은 배치가 이루어졌다. 이들 성가대의 주된 기능은 하나님을 찬양하기 보다는 회개와 회심의 설교를 하기 전에 회중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드는 사전준비의 성격이 짙었다.

 

개척자 전통의 예배형식은 19세기와 20세기에 미국에서 대단한 열품을 일으켰으며, 교파를 초원하여 광범위하게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유명한 부흥사들인 로버트 슐러나 오랄 로버츠(Oral Roberts), 그리고 지미 스와갈트(Jimmy Swaggart) 등이, 그 출신교단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모두 동일한 예배구성을 사용하고 있으며, 현대 한국교회가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등 서로 다른 교단임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예배형식을 사용하는 것도 같은 논리로 설명될 수 있다.

 


개척자 전통의 예배는 성가대의 기능과 역할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금박을 입힌 오르간의 파이프들이 강단 전면 가장 눈에 띄는 부분에 도입되었고, 높게 돋우어진 성가대의 좌석에는 가운을 차려입은 성가대원들이 회중석을 바라보며 앉는, 음악회 무대와 같은 배치가 이루어졌다. 이들 성가대의 주된 기능은 하나님을 찬양하기 보다는 회개와 회심의 설교를 하기 전에 회중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드는 사전준비의 성격이 짙었다.

 

개척자 전통의 예배형식은 19세기와 20세기에 미국에서 대단한 열품을 일으켰으며, 교파를 초원하여 광범위하게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유명한 부흥사들인 로버트 슐러나 오랄 로버츠(Oral Roberts), 그리고 지미 스와갈트(Jimmy Swaggart) 등이, 그 출신교단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모두 동일한 예배구성을 사용하고 있으며, 현대 한국교회가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등 서로 다른 교단임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예배형식을 사용하는 것도 같은 논리로 설명될 수 있다.

 


(7) 오순절 예배전통


오순절 전통의 최초 출현은 20세기의 첫 시간, 190111, 정월 초하루에 이루어졌다. 캔자스 주의 토페카에 있는 벧엘성경대학의 학장인 챨스 폭스 팔햄(Charles Fox Parham)이 학생들에게 성령세례의 증거를 성경에서 찾아보라고 조언을 하였고, 학생들이 성경을 찾던 중 여학생인 아그네스 오즈멘(Agnes N. Ozman)이 방언을 말하기 시작하였다. 이때부터 팔햄은 순복음’(Full Gospel) 또는 오순절’(Pentecostal)로 칭해지는 설교를 하기 시작하여, 성결교 설교자인 세이모어(William Saymour)와 함께 2의 축복,’ 즉 성령의 내주하심에 대한 체험인 성령세례를 외치기 시작하였고, 이는 곧바로 방언과 연결되었다.


오순절 전통의 예배가 탄생한 배경으로는 대략 여섯 가지를 들 수 있다. 감리교에서 유래한 성결교회의 열정적 신앙형태와, 침례교의 회중 자율주의, 설교와 찬송이 예배를 지배했던 서부 개척자 전통, 성령이 사람들로 하여금 말을 하도록 요구한다는 생각을 지녔던 퀘이커 교도들, 그리고 쉐이커(Shaker) 교도들이었다(물론 오순절 교회와의 역사적 연관성은 찾을 수 없다 하더라도, 18세기 중반의 쉐이커교도들은 방언을 말했기 때문이다.)

 

오순절 예배의 특징은 첫째, 사회적 차별을 초월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모든 사람에 대한 평가는 그들이 예배에 기여하는 은사들, 즉 방언, 통역, 예언, 간증, 치유 등으로 평가될 뿐, 일체의 성별, 인종별, 사회적 차별을 초월한다.


두 번째 특징은 방언을 중시하는 것이다. 방언은 성직을 받기 전에 받아야 하는 필수적인 은사가 되었는데, 그 이유는 방언이 성령 받음에 대한 표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세 번째 특징은 예배의 즉흥성이다. 예배 중에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기꺼이 따르겠다는 내적 의식을 분명하게 갖고 있는 회중들의 모임이기 때문에, 목사가 예배를 관할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갈 뿐이다. 심지어 설교 도중이라도 성령의 격발이 있으면 찬송을 할 수도 있고 또 다른 무엇이라도 할 수 있었다. 이는 예배에 대한 방해가 아니라 오히려 기뻐해야 할 은사로 취급받았다. 그러므로 회중은 고도로 능동적인 참여를 하게 되는데, 이것이 네 번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다섯 번째 특징은 흑인과 여성들이 주도하는 예배전통이었다는 점이다. 최초로 공적인 방언을 한 사람이 아그네스 오즈멘이라는 여성이었으며, 아주사 거리(Azusa Street)에서 최초로 성령의 임재를 경험했던 사람도 제니 무어라는 여성이었고, 가장 눈부신 지도자들 중의 한 사람인 에이미 셈플 맥퍼슨도 여성이었다. “교회에서 여자들은 잠잠하라는 바울의 명령(고전 14:34-35)은 그들에게 있어서 전혀 장애가 되지 않았다.


오순절 예배전통의 경건은 무엇보다도 성령에 의존하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예배의 내용뿐만 아니라 순서와 결과까지도 가르쳐 주신다. 따라서 성령은 기록된 말씀인 성경보다도 우선이었다. 오순절 예배가 지닌 또 하나의 경건이 있다면 그것은 천년왕국적 소망이다. 성령임재의 여러 가지 표적들은 다름 아닌 임박한 시대의 종말을 나타내는 지표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2:28)라고 기록된 말씀에 근거한 것이었다. 성경에 대한 문자주의적이고 근본주의적인 해석 또한 오순절예배의 경건 중 하나였다.

 

위에 열거된 예배전통들은 모두 주요 개신교회들이다. 이 외에도 초대교회부터 시작되어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는 동방교회들과 로마 가톨릭 교회의 예배 등이 그리스도교 세계에서 또 다른 큰 줄기를 형성한다. 이는 그리스도교 예배가 그만큼 다양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오로지 내가 속한 교회와 내가 드리는 예배의 방식만 옳고, 다른 사람이 속한 교회와 다른 사람의 예배 방식은 무조건 틀리다고 단정하는 자세는 옳지 못하다. 그러므로 이렇듯 다양한 그리스도교 예배의 전통들 앞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법과 형식이 존재함을 인정하고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하며, 나아가 어떻게 예배하는 것이 최선의 방식인지를 끊임없이 묻고 현재의 예배를 갱신해 나가는 자세를 지녀야 할 것이다.